고려거란전쟁에서는 현종의 왕비로는 두 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요. 바로 원정왕후, 원성왕후가 등장합니다.
현종의 가계도를 보면 현종의 총왕후가 7명이네요. 이들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.
제1 비 원정왕후 김 씨: 6대 성종과 문화왕후의 딸이며, 제2 비 원화왕후와는 이북자매이며, 제5 비 원용왕후와는 친사촌 관계이다.
원정왕후는 어머니 문화왕후의 본관을 따랐으며, 어머니의 궁궐이었던 현덕궁을 물려받아 현덕왕후라고 불렀다.
현종의 첫 번째 아내로 자신의 이복누이인 원화왕후와 함께 제2차 여요 전쟁 당시 거란군을 피해 거란군을 피해 몽진하는 등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제2차 여요 전쟁 때 임신 중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자녀에 대한 기록은 없다. 몽진 도중 유산을 했거나 출산한 뒤 얼마되지 않아 요절했을 것으로 보인다.
이후 1018년 4월 제3차 여요전쟁의 전운이 감돌던 시기에 현덕궁에서 죽었다. 사후 큰 예우를 받아 홀로 현화사에 초상화가 걸리게 되었다.
제2 비 원화왕후 최 씨: 6대 성종과 연창궁부인 최 씨의 딸이었다. 이복자매인 원성왕후처럼 어머니의 본관을 따랐다. 슬하에 효정공주, 천수전주 두 딸을 낳았다.
원화왕후는 항춘전을 분봉받은 왕비였다. 후에 전각의 명칭을 상춘전으로 바꾸었다. 남편 현종을 제2차 여요 전쟁 중 남하했다.
제3 비 원성왕후 김 씨 : 안산군 개국 후 김은부의 딸이다. 자매로 제4비원혜왕후, 제7 비 원평완후가 있었다. 제2차 여요 전쟁 때 현종이 거란군을 피해 현 충청남도 공주시까지 내려갔다. 이때 공주절도사 김은부가 현종에게 큰 도움을 주어 왕은 김은부의 세 딸들을 왕비로 맞이했다. 그중 한 명인 원성왕후는 현종에게 직접 옷을 지어 바쳤다고 한다.
슬하에 아들들인 덕종과 정종, 딸들인 문종의 제1왕후 인평왕후와 경숙공주를 두었다.
1028년에 사망하였으며, 원성왕후라 한 뒤 명릉에 장사 지냈다. 이후 맏아들인 덕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성왕태후로 추존했다.
제4 비 원혜왕후 김 씨 : 바로 위에서 설명한 김은부의 둘째 딸입니다. 슬하에 아들로 문종과 정간왕 왕기가 있으며 딸은 덕종의 제3왕후 효사왕후다.
고려 왕실의 족보는 현종 이후엔 자신의 친아들 문종이 계보를 이어나간다. 현종과 함께 고려왕조의 중시조가 된 셈이다.
시호가 궁주->왕비->왕후->태후 순으로 느릿느릿 올라갔다. 이후 친아들인 문종이 즉위한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태후의
시호를 올려 예를 갖췄다.
제5 비 원용왕후 유 씨 : 현종도 원용왕후의 부모들도 모두 태조 왕건의 자손들입니다. 현종은 등극 안 지 4년째 되는 해인 1013년에 원용와후와 혼인했다. 관련 기록이 드물지만 이를 통해 현종의 결혼 의도를 알 수 있는 원용왕후의 아버지인 경장태자는 성종의 친동생이다. 현종은 성종의 두 딸인 원정왕후, 원화왕후와 혼인하고 이어 성종의 조카인 원용왕후와도 혼인해 선대 국왕인 성종과의 인연을 깊게 다지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.
제6 비 원목왕후 서 씨 : 거란과의 1차전 때 담판을 벌여, 압록강 하류 강동 6주 지역을 고려 영토로 편입한 그 유명한 서희의 손녀입니다.
이천서 씨는 이천 호족 출신의 고려 최고 문벌귀족 가문이었다. 현종은 신하들을 통제할 수 있는 인맥을 가지게 되었다.
생전존호는 흥성궁주 숙비로 흥성궁의 주인이자 숙자 존호를 받은 비였다. 남편인 현종, 의붓아들 덕종, 정종 대를 거쳐 문종 대에 사망했을 정도로 꽤 오래 살았다. 문종은 의붓어머니 원목왕후가 사망하자 문화왕후의 예를 따라 상복을 입지 않고 능호를 올리지 않는 장례를 지냈다.
제7 비 원평왕후 김 씨 : 앞에서 나온 김은부의 딸 원성왕후, 원혜왕후와 친자매지간입니다.
아버지 김은 부는 제2차 여요 전쟁 당시 현종이 거란을 피해 피난 갈 때 열정적으로 지원한 인물이었고, 현종은 그와 인척관계를 만들어 이에 보답하였다. 이런 이유로 원평왕후 또한 언니들과 같이 궁에서 상당한 존중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. 그러나 <고려사> 후비열 전에 다른 가문인 현종의 제5왕후 원용왕후와 제6왕후 원목왕후 다음으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언니인 원혜왕후가 사망한 후 입궁한 것으로 보인다. 원평왕후는 1028년 10월에 시호와 능호를 받았기 때문에 그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. 슬하에 효경공주를 두었지만, <고려사>에 원평왕후 소생이란 기록을 말고 다른 기록은 없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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